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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왜 도로명 주소를 만들었는가

한국에선 왜 도로명 주소를 만들었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릴 때 동네 택배 아저씨가 왜 항상 전화를 먼저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주소를 줬는데 왜 못 찾냐고, 속으로 짜증을 냈던 기억이 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 주소 자체가 사람을 찾아가도록 설계된 게 아니었던 거다.

한국의 옛날 주소 체계, 그러니까 지번 주소는 땅을 나눠가질 때 붙인 번호에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 때 토지 조사를 하면서 필지마다 번호를 매겼는데, 그게 그대로 주소가 됐다. 땅의 분할과 합병이 반복되면서 번호는 뒤죽박죽이 됐고, 1번지 옆에 150번지가 붙어있는 기현상이 생겼다. 같은 동 안에서도 번지수가 순서대로 이어지지 않으니, 처음 가는 동네에서 특정 번지를 찾으려면 그야말로 감으로 헤매야 했다. 배달원도, 소방차도, 구급대도 마찬가지였다. 응급 상황에서 주소를 불러줬는데 찾아오는 데 10분이 걸린다면, 그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다. 실제로 소방청 통계를 보면 과거에 출동 지연의 상당 원인이 주소 오인식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도로명 주소로의 전환을 처음 논의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오래 걸렸다. 법 만들고, 시범 지역 운영하고, 반발 달래고, 다시 수정하는 과정이 거의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2014년에 드디어 도로명 주소가 공식 주소로 전환됐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가 쏟아부은 예산이 수천억 원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묻는다면, 단순히 주소 찾기 편하라고 그런 게 아니다. 전자상거래 물류 시스템, 내비게이션, 긴급 구조 시스템, 행정 전산화, 이 모든 것이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주소 체계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지번 주소로는 그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할 수 없었다.

도로명 주소의 원리는 단순하다.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도로를 따라 건물에 번호를 매긴다. 시작점에서 끝점으로 갈수록 번호가 올라가고,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써온 방식이다. 이걸 한국에 이식한 거다. 덕분에 이제 주소만 보면 그 건물이 도로의 어느 지점쯤에 있는지 대략 감이 온다. 100번이면 도로 중간쯤, 200번이면 더 안쪽이겠구나 하는 식으로. 물론 여전히 처음 가는 곳은 내비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주소 자체가 위치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거다.

그런데 막상 전환이 되고 나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수십 년을 써온 지번 주소가 몸에 배어 있으니까, 갑자기 낯선 도로 이름이 들어간 주소를 외우는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특히 어르신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컸다. "내가 사는 곳 주소도 모르게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동 이름이 주소에서 사라지다 보니 자신이 어디 사는 사람인지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는 분들도 있었다. 주소가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걸, 정책 입안자들이 조금 가볍게 봤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 과도기의 혼란은 꽤 오래 갔다.

결국 도로명 주소는 편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정밀하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대형 물류 플랫폼이 하루 수백만 건의 배송을 처리할 수 있는 건, 주소 데이터가 표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방차가 골든타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주소창에 타이핑하는 그 몇 글자가, 사실은 수십 년에 걸친 행정 개혁의 결과물이다. 불편하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돌아보면 바꾸길 잘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