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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주소vs지번주소

도로명주소vs지번주소

등기부등본을 떼러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한 적 있다. 창구 직원한테 주소를 불러줬는데, "도로명이요, 지번이요?" 하는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 분명히 같은 집 주소인데 왜 두 가지가 존재하는 건지, 그때까지도 명확하게 정리가 안 됐었다. 사실 이 두 주소 체계는 단순히 표기 방식만 다른 게 아니라, 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다. 지번주소는 땅덩어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거고, 도로명주소는 사람이 이동하는 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거다. 출발점이 완전히 다르니까, 같은 건물을 가리키면서도 생김새가 전혀 달라 보이는 게 당연한 거였다.

지번주소는 일제강점기 때 토지 과세를 목적으로 땅에 번호를 매기던 방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주소가 땅의 역사를 따라간다. 분필이 되고 합필이 되고 하다 보면 번지가 쪼개지고 붙고를 반복하면서, 어느 동네는 1번지 옆에 갑자기 127-3번지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처음 오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도 없이는 찾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같은 번지 안에 여러 건물이 들어서는 경우도 많아서, 배달 기사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주소들이 꽤 있다. 반면에 도로명주소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전환됐는데, 길에 이름을 붙이고 건물에 번호를 순서대로 매기는 방식이다. 큰길에서 작은 길로, 왼쪽 홀수 오른쪽 짝수, 북쪽에서 남쪽으로 번호가 올라가는 식이다. 낯선 동네를 처음 찾아가도 도로명주소만 있으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실제로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게 된 것도 도로명주소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근데 일상에서 써보면 아직도 지번이 훨씬 편한 상황들이 있다. 부동산 거래할 때가 딱 그렇다. 토지 관련 공적 서류들은 지금도 지번을 기준으로 발급된다. 토지대장, 지적도, 건축물대장 같은 것들이 다 그렇다. 등기부등본도 표제부에는 지번이 올라간다. 그래서 아파트를 사고팔 때 계약서에 도로명주소를 적더라도, 등기 관련 업무를 처리할 때는 지번을 알고 있어야 한다. 두 주소를 연결해주는 게 뭐냐면, 사실 건물 하나에 두 주소가 다 붙어있다고 보면 된다. 그냥 공식 대외 표기는 도로명, 토지 행정 내부에서는 지번을 병행하는 구조다. 처음엔 이게 이중 관리처럼 느껴져서 비효율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따지고 보면 목적이 다른 두 시스템이 각자 맡은 영역에서 굴러가고 있는 거라 아직까지는 이 구조가 유지되는 거다.

문제가 생기는 건 두 주소를 혼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다. 예를 들어 택배 보낼 때 수취인 주소를 도로명으로 입력했는데, 수령지 건물이 오래된 빌라라서 내비게이션이 골목 초입에서 멈춰버리는 경우가 있다. 배달 기사가 전화해서 "지번 주소 아세요?" 하고 물어보는 게 그냥 습관처럼 된 분들도 있다. 반대 경우도 있다. 관공서 민원 서류에 지번을 써놨더니 도로명주소 기재란에 틀리게 입력됐다고 반려된 경험 있는 사람도 꽤 된다. 공공기관 민원 서비스는 이미 도로명주소를 공식으로 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두 주소를 내 집 것만큼은 둘 다 알고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귀찮긴 한데 어쩔 수 없다.

도로명주소로 완전히 넘어간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예전 주소"라고 지번을 말하는 어르신들이 있는 걸 보면, 주소 체계 전환이라는 게 얼마나 뿌리 깊게 생활에 박혀있는 건지 실감이 된다. 사실 지번은 그냥 행정 편의를 위한 번호가 아니라, 그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한테는 일종의 기억 좌표 같은 거다. "강남구 논현동 몇 번지 살았다"는 말에는 단순한 위치 이상의 무게가 있다. 도로명주소가 아무리 실용적이어도 그걸 하루아침에 밀어낼 수는 없다. 결국 두 체계가 한동안은 같이 갈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그때그때 맞는 걸 골라 쓰는 법을 익히게 된 것 같다. 복잡하다면 복잡한 건데, 생각해보면 사람 사는 동네 주소 하나에도 이렇게 역사가 쌓여있다는 게 묘하게 재미있기도 하다.